16 “이 명단 제대로 된 게 맞나요?” 「뭐라는 거야」 “빠진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예요” 나는 사람 이름이 빼곡이 적힌 명단 위에 줄을 긋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제제가 퇴근길에 건네준 만난 사람 명단이다. 방송국 스태프, 회사 사람들, 외부 업체 사람들, 광고 회사 사람들, 광고 업체 사람들, 친분이 있는 가수·연기자들을 포함하면 200여명...
15 로드매니저 7일차.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참아야 한다. 화를 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뺨의 홈이 더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참자, 또 사고를 낼 순 없다. 나는 상태가 더 나빠진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그래도 욕먹는 데는 좀 내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14 크러쉬 엔터테인먼트는 과거 가수 겸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대표 장승혁이 설립한 연예기획사였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형기획사에서 오랫동한 일한 그가 나가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왜 안정된 직장을 버리냐며 모두 말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타입의 음악인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획사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그 손을 모두 뿌...
13 연예인들은 사방에 카메라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를 가면 바로 사진과 함께 어느 장소에서 연예인을 봤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고, 24시간 내내 스토커급으로 그들을 추적해 조금이나마 자극적인 아이템을 뽑아내려는 기자도 즐비하다. 구름같은 팬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언제 어느 곳에서 팬이 나올지 모른다. 행동 하나, 표정 하나로도 ...
12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칸 앞에서 제제는 떠날 줄을 몰랐다. 2시간 후면 바로 샵에 가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받아야 했지만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 날 밤 기적처럼 칸이 살아나고 나서 제제는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칸의 상태를 물었다. 쑤에게도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날까 그날 아침에 바로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맡기기도 했다. 휴가 ...
11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차에, 그것도 조수석에 앉아있는 상황이라니 인터넷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모든 소녀팬이 꿈꾸는 로망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쿵쿵거리며 뛰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아주, 대단히 어려운 협상이었으니까. 나는 제제 얼굴의 숫자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늦지 않아...
10 형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3시쯤이었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안주를 잔뜩 들고 나타난 이한은 역시나 초반에 뻗어버렸고, 제제는 대리를 부르려다 그냥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돌아왔다. 자기가 사온 안준데 반도 못먹고 갔다. “왜 그 형은 나이를 안 먹는 거 같지......” 술을 먹을 때 멀쩡하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얼굴은 붉어...
09 “......일체고 진실불허고서얼~~~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제제는 눈을 깜빡였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제제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건 뭐야. 거실 한복판에서 눈을 감은 채 어깨를 들썩이던 남자가 빙글 몸을 돌리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제제는 허, 웃었다. 볼 때마...
08 쿵. 쿵. 쿵. 쿵.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허리를 펴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어야 한다. 수상하다는 얘길 들으면 곤란하니까. 번호표를 받을 때 좀 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내 자리는 딱 중간에서 약간 뒤였다. 나는 마스크를 조금 더 올려 썼다. 나는, 제제의 새 앨범 발매 기념 팬사인회 현장에 앉아 있었다...
07 “이렇게 서두르시지 않아도 됩니다. 좀 쉬셔도......” “질질 끄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어제는 감사했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그는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며 어서 앉으라고 말했다. 어제와 같은 방, 같은 자리다. 곧 어제와는 다른 모양의 찻잔이 내 앞에 놓여졌고, 진한 커피냄새가 났다. “어제 제가 노려진 이유는, 이...
06 「ㅡ뒈져버려. 너 같은 년은......」 「내가 안 그랬어. 정말이야!!」 ......아, 씨발. 나는 팔을 들어올려 눈을 가렸다. 귀를 뜯어버리고 싶다. 악몽 레퍼토리 따위, 더 늘리고 싶지 않은데. 이부자리에서 일어난 건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방 안에 흐르는 건 어제 저녁부터 틀어놓은 음악뿐이었다. 휴대폰은 옛날 옛적에 배터리를 분리해 던져둔 ...
05 늦은 밥을 먹으며 사고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벌떡 일어나 내 몸을 이리 저리 살피며 정말 다친 데 없냐고 다그쳤다. 나는 서랍 속에 숨겨놓은 피묻은 패딩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왜 굳이 그런 데 끼어들어 귀찮은 일을 만드냐고 했지만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냐며 바로 역공당했다. 아직 다른 목격자나 뺑소니범을 찾는 현수막은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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